사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. 어쩌면 예수님께서 심문을, 아니 모욕을 당하시는 안나스의 뜰에까지 몰래 들어온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. 긴장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안쪽의 상황을 살폈습니다. 주위에 누가 있는지,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를 신경 쓸 경황이 아니었습니다. 대제사장과 아는 제자를 통해 그 안으로 들어왔지만 은밀하게 지켜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. 어쩌면 거짓과 폭력의 열기로 가득한 그곳에서 베드로의 모습은 이상하게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띄었을 지도 모릅니다.

사람들이 묻습니다. ‘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이지?’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이미 놀란 가슴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.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붙들고 무엇인가 대답해 주어야 했습니다. 그러나 대답의 내용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. 어떻게든 의심스러워 하는 그들의 눈빛을 잠재워야 했기 때문입니다. 베드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답은 “나는 아니다”였습니다. 분명하게 자신의 진짜 신분 대신 위장할 수 있는 안전한 신분을 말해야 했습니다. ‘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다. 나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다.’ 예수님께서 모욕당하는 자리, 거짓 증언으로 가득한 현장, 말도 안 되는 재판의 결과가 나오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. 그리고 어쩌면 그곳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을 숨겼습니다.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 중에 말입니다.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. 그런데도 누구나가 가지는 불편한 감정은 숨길 수 없습니다. “꼭 그래야만 했을까?”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베드로처럼 했을 것 같은데, 얼마든지 힘들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.

“내가 그니라”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들을 잡으려는 폭력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. 예수님께서 자신을 분명하게 밝힌 이유는 제자들을 그 폭력에서 내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.(8절)

예수님은 “내가 그니라(I am he)” 말씀하셨고, 베드로는 “나는 아니다.(I am not)”라고 말했습니다.